와인에서 보르도의 샤토는 성이 아닌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는 농장주가 포도를 재배하고 그곳에서 직접 와인을 양조하는 와이너리라고 할 수 있다.
멜롯 100%로 만든 전설적인 와인 포므롤의 샤토 ‘페트뤼스’의 포도밭과 저택.
보르도 지롱드 강의 우안에 위치한 생테밀리옹과 포므롤은 좌안의 메독이나 그라브와는 다른 스타일의 명품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이다. 비교적 새롭게 떠오른 보르도의 보석이지만, 로마시대부터 와인을 생산해 온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필자는 보르도에서 동쪽으로 40㎞ 떨어진 도르도뉴 강변에 위치한 최고의 와인 산지 생테밀리옹과 리부른 근교의 포므롤을 찾았다. 로마시대의 유적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고도 생테밀리옹은 언제 보아도 필자의 가슴을 뛰게 하였다. 이곳에서 채석한 핑크빛이 은은하게 섞인 크림색 생테밀리옹의 석재로 지어진 도시의 건축물들은 와인과 함께 인류의 오랜 문화적 유산이 되었다. 필자는 언제나 와인은 그곳의 테루아를 반영한다고 믿고 있는데, 이곳 와인들이야말로 생테밀리옹의 아름다운 빛깔처럼 부드럽고 델리케이트한 풍미를 가장 잘 느끼게 한다. ‘샤토 슈발블랑’과 포므롤의 ‘페트뤼스’가 바로 이 지역의 대표적인 와인이다. 슈발블랑은 하얀 모래와 석회암 자갈로 이루어진 토양과 다소 서늘하고 습한 기후에 적합한 카베르네 프랑을 주품종으로, 가장 부드럽고 균형 잡힌 와인을 생산한다. 필자가 Wine MBA 시절 초청받아 오찬을 하였던 오발 모양의 리셉션 건물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현대적인 양조장이 새롭게 건설되었다. 그러나 오래된 크림색의 교회당과 샤토 건물은 여전히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로마네 콩티’에 버금가는 ‘페트뤼스’ 포므롤의 ‘페트뤼스’는 특별한 등급 와인이 아닌데도 ‘로마네 콩티’에 버금가는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와인 중 하나이다. 생테밀리옹과 북서쪽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는 포므롤은 매우 작은 규모의 와인 생산지다. 토양은 약간의 자갈이 섞여 있는 모래나 점토질로 생테밀리옹과는 차이가 있지만 그 경계지역에 유명한 샤토들이 산재해 있다. 특히 페트뤼스나 르팽이 있는 곳은 약간의 붉은 색을 띠는, 멜롯 재배에 적합한 순수한 점토질 토양이다. 메독에서는 단순히 보조역할을 하는 멜롯 100%로 세계 최고의 명품 와인을 생산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드라이하고 거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부드러워지는 메독의 카베르네 소비뇽과는 달리 멜롯은 장기 숙성에 적합하지 않은 품종이다. 그러나 포므롤의 테루아를 닮은 이곳 멜롯 와인은 몇 년이 지나면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한 우아함을 자랑하는데, 대부분 10년 안에 마시는 것이 좋다. 페트뤼스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보르도의 새로운 보석 생테밀리옹 마을 입구. 왼쪽에 로마의 유적이 보인다.
2005년 골든글러브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Sideways’에서 주인공 마일스가 애지중지 보관하고 있는 보물 같은 와인이 원래 시나리오에는 ‘슈발블랑’이 아닌 ‘페트뤼스’였다고 한다. 그러나 시나리오를 받아본 페트뤼스의 오너 장 피에르 무엑스가 별 볼일 없는 영화로 생각하고 대사에서 빼라고 하였다. 그 후 시나리오가 ‘슈발블랑 1961’년산으로 수정되고, 최고의 품종으로 피노누아를 극찬하면서 멜롯은 개성 없고, 형편 없는 품종으로 혹평되었다. 금세기 최고의 와인 스토리텔링 영화가 된 ‘사이드웨이’의 성공 이후 전 세계는 피노누아와 슈발블랑의 열풍에 빠져들었으니, 페트뤼스와 포므롤 와인 생산자들에게는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페트뤼스와 자웅을 겨룰 수 있는 또 다른 와인 중에는 ‘르팽’이 있다.
생테밀리옹마을 에서 바라본 포도밭 풍경. 오른쪽은 로마의 유적이다.
필자는 페트뤼스의 포도원을 구경한 이후 르팽을 찾았는데 지도와 내비게이션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마을 전체가 작은 포도밭으로 엉켜 있고 메독처럼 눈에 띄는 샤토 건물을 발견할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카튀소’라는 작은 마을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초등학생을 만나 물었더니 차량이 통과하기 힘든 작은 길을 따라 마을 뒤에 있는 르팽까지 안내해 주었다. 동전 2유로를 팁으로 주었더니 휘파람을 불며 언덕 너머 포도밭 사잇길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르팽(Le Pin)은 소나무라는 뜻인데, 실제로 작지만 예술적이고, 또 현대적인 양조장 건물 앞에 두 그루의 소나무가 외롭게 서 있다. 필자를 맞이한 오너 티앙퐁(Thienpont) 가문의 조카인 시릴은 양조장 건물이 벨기에의 세계적인 건축가 폴 로브레히트의 작품이라고 하였다. 5ha의 작은 포도원에서 1년에 5000~6000병의 소량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페트뤼스보다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그것은 포도 재배부터 발효 숙성까지 전 과정을 수작업을 통해 만드는 장인정신과 희귀성에 있을 것이다. 참고로 페트뤼스나 르팽은 변변한 샤토 건물이 없는데도 현지인들은 ‘샤토’로 부른다. 심지어 보르도에는 밤하늘의 별만큼 샤토가 많다고 하였는데 어떤 와이너리에 가면 샤토는 찾아볼 수 없고 작은 농가만 있는 곳도 있다.
생테밀리옹 1등급와인 ‘샤토 트로플롱 몽도’의 레스토랑 테라스에서 바라본 포도밭.
2012년에 생테밀리옹 특1등급으로 승급한 ‘샤토 안젤루스’. 필자가 방문할 때 종탑에 있는 종으로 애국가를 연주해 주었다.
작은 포도원서 소량 생산하는 ‘르팽’ 필자는 이 지면을 통해 독자들 사이에 오해가 있는 와인에서의 샤토 명칭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 성(불어: Chateau, 영어: Castle, 독어: Burg)은 원래 적의 공격을 방어하거나 로마의 군단처럼 겨울을 나기 위한 주둔지로서 흙이나 돌로 쌓은 건축물이다. 오늘날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유럽의 성은 9세기 이후 중세 봉건시대에 영주들이나 왕이 자신들이 지배하고 있는 영토를 지키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머무르던 요새화된 귀족 건축물이었다. 프랑스에서 이러한 성은 지금도 루아르 강변에 있는 앙제성이나 앙부아즈성을 방문하면 볼 수 있다. 그러나 보르도의 샤토는 대부분 와인산업이 융성하던 18세기 이후에 지어졌으며, 해자로 둘러싸여 있거나 포탑으로 무장되어 있는 샤토가 아닌 주거용 저택으로 지어진 것이다. 그 규모나 건축양식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성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보르도의 샤토는 성이 아닌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는 농장주가 포도를 재배하고 그곳에서 직접 와인을 양조하는 와이너리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카베르네 프랑으로 생테밀리옹 특 1등급 와인을 생산하는 ‘샤토 슈발블랑’. 영화 ‘사이드웨이’에서 언급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로마의 유적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명한 고도 생테밀리옹의 낭만적인 모습. 멀리 포도원이 보이고 마을의 건물들은 크림색 생테밀리옹 석재로 지어졌다.
특1등급으로 승급한 샤토 안젤루스 포므롤에서 가장 넒은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는 샤토 네닌과 슈발블랑에 버금가는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생테밀리옹 1등급 와인 샤토 피작의 방문을 마치고 2012년에 특1등급으로 승급한 샤토 안젤루스를 방문하였다. 필자가 1986년에 방문한 바 있는 이곳은 시골스런 옛 풍경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종탑이 있는 새로운 건물로 바뀌어 있었다. 샤토에 들어서기 전 종탑의 종들이 애국가를 연주면서 필자의 방문을 환영하여 주었다. 보르도의 그랑크뤼 와인만을 취급하는 네고시앙 몽타냑의 초청으로 ‘샤토 트로플롱 몽도’가 운영하고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하였다. 생테밀리옹 마을 남쪽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한 이곳은 최근에 1등급 와인으로 승급된 새로운 별이다. 야외 테라스에서 향기로운 와인과 함께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진 포도밭을 바라보면서 하는 식사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하였다. 저녁은 이번 보르도 여행의 마지막을 기념하며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인 ‘호스텔레리 드 플레상스’에서 하였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레스토랑의 테라스에서 바라본 석양에 물들어가는 포도밭과 어둠이 깃들어가는 마을의 풍경은 너무나 서정적이었다. 필자는 오래된 석조건물 창에서 새어나오는, 마치 중세에 촛불을 켜놓은 것 같은 아련한 불빛을 뒤로 하고 언젠가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낭만의 와인마을 생테밀리옹을 떠났다.
<글·사진 송점종 우리자산관리 대표·Wine MBA j-j-song@hanmail.net>
<와인기행>은 이번호를 끝으로 연재를 종료합니다. 그동안 <와인기행>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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