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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기행]바스크의 페트루스, 브라나 와인의 야성미 <2014.10.21ㅣ주간경향 1097호>
등록일
2014-10-27 오후 2: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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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바스크 스타일의 명품 와인을 생산하는 Brana 와이너리의 포도원 풍경. 목가적인 생장 피에드 포르 마을 정경 너머 피레네 산맥이 보인다.

해발 300~400m에 위치한 ‘메종 브라나’의 포도원은 이상적인 남향과 철분이 풍부한 트리이아스기의 지층에 편암, 이회토, 점토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피레네의 테루아였다.

스위트 와인으로 유명한 쥐랑송과 바스크 스타일의 와인산지인 이룰레기를 방문하기 위해 말벡의 고향 카오르를 떠났다. 쥐랑송과 이룰레기는 피레네 산맥의 중턱에 위치해 있다. 가는 도중 미디-피레네의 수도인 툴루즈에서 1박을 하였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고 있는 툴루즈는 풍부한 문화적 유산과 ‘핑크타운’ 혹은 ‘장미의 도시’로 불릴 만큼 중세 파스텔 시대의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축물이 즐비한 도시다. 

툴루즈에서 쥐랑송 와인산지의 중심 마을인 강(Gan)까지는 남서쪽으로 약 200㎞ 거리이지만 피레네 고원을 지나는 지방도로여서 2시간30분 이상이 소요되는 꽤 긴 여정이다. 쥐랑송 와인협동조합은 강 어귀 앙리 4세의 거리에 있었다. 이 지역은 원래 나바르 왕국의 왕이었던 앙리 4세가 태어난 해인 1553년에 이곳 쥐랑송 와인을 미사주로 사용하여 유명해졌다. 그 후 앙리 4세는 낭트칙령을 통해 신구교도 간의 끝없는 종교전쟁이었던 위그노 전쟁을 종결하고 명실상부한 프랑스의 왕이 되어 부르봉 왕조 시대를 연 인물이다.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과 처절했던 종교 갈등을 그린 영화가 바로 ‘여왕 마고’다. “하나님은 내 왕국의 모든 국민들이 일요일이면 닭고기를 먹길 원한다”고 한 그의 말에서 유래하여 오늘날 프랑스에서 닭은 풍요의 상징이 되었다.

개성 있는 스위트 와인으로 유명한 쥐랑송 와인협동조합 와이너리 간판.

피레네산맥 특유의 쥐랑송 와인
홍보담당 마틸드 포의 안내로 쥐랑송 와인협동조합의 역사와 특별한 양조과정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쥐랑송 와인협동조합은 2차 세계대전 후 300여 포도생산자들이 참여해 출범시킨 협동조합으로, 현재의 쥐랑송 와인산업을 일으켜 세운 주역이다. 쥐랑송 와인의 특징은 피레네 산맥 특유의 기후와 이곳 테루아에 적합한 토착 품종에 있다. 일찍 수확한 ‘그로망상’ 포도로는 드라이 타입의 ‘쥐랑송 섹’을 만들고, 껍질이 두껍고 늦게 수확한 ‘프티망상’으로는 므왈레라는 스위트 와인을 만든다. 귀부병에 걸린 포도로 만드는 다른 지역의 스위트 와인과 달리 이곳 스위트 와인은 아주 특이하다. 마치 건포도처럼 포도가 말라 쪼그라들 때까지 기다렸다(심지어 12월까지) 수확하여 만든다. 이것을 ‘파스리아주’라고 부른다. 파스리아주가 가능한 것은 이 지역의 날씨 덕분이다. 스페인의 고원지대에서 불어온 건조하고 따뜻한 바람과 늦가을까지 계속되는 충분한 일조량에 밤에는 온도가 내려가 당도와 산도가 농축되기 쉬운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쥐랑송 와인을 시음해 보니 공통적으로 약간의 초록빛을 띠며 스위트하지만 산도가 높아 상큼함이 느껴졌다. 이 지방 최고 품질의 대표 와인인 ‘에투왈 데스 네이주 2010’은 다소 가볍긴 하지만 보르도의 소테른에 버금가는 복합적인 풍미가 오래 지속되었다. 이룰레기 와인산지의 중심 도시인 생장 피에드 포르는 강에서 남쪽으로 100㎞ 떨어진 스페인 접경지대에 있다. 스페인 국경까지는 불과 8㎞로 9세기부터 시작된 산티아고 순례길(Santiago de Compostela)의 출발지로 더 알려져 있다. 포도밭은 피레네 산맥 중턱의 가파른 경사지인 해발 200~400m의 고원지대에 산재해 있다. 로마시대의 가도였던 N134도로를 달리며 바라본 차창 밖 풍경은 소와 양떼들이 방목되어 있는 초원과 어우러져 목가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하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출발지로 유명한 생장 피에드 포르의 성채마을. 이룰레기 와인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독특한 붉은 와인색의 건물 창들
생장 피에드 포르에 가까워지자 주변의 경관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특히 건물의 창들이 유독 붉은 와인 색깔이었는데 전통적인 바스크색이라고 한다. 이곳은 중세부터 스페인과 프랑스의 영토분쟁으로 마치 알자스 지방처럼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 양국 간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던 성채가 지금은 학교와 관광지로 변해 있었다. 

성곽 도시 입구에 있는 ‘야고보의 문’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다. 현재는 프랑스 영토에 편입되었지만 여전히 독자적인 바스크문화를 유지하고 있으며 주민들도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필자는 가장 전형적인 바스크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와인메이커 ‘메종 브라나’를 찾았다. 1897년 주류판매상으로 출발한 브라나 가문은 현재 오드비와 와인을 직접 생산, 판매하고 있다. 이룰레기 와인은 그동안 필록세라에 의한 피해로 토착 품종들이 거의 사라지고 프랑스에서는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는 바스크 스타일의 와인이 2차 세계대전 전까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AOC등급도 1970년에 뒤늦게 획득하였다.

브라나 와이너리에서 필자가 시음한 바스크 스타일의 와인들. 왼쪽에서 두 번째가 ‘도멘 브라나 이룰레기 2008’이다.

오빠인 장 브라나와 함께 4대째 가문의 사업을 이어받고 있는 젊은 마르틴 브라나 여사가 필자를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서양배로 오드비를 생산하는 증류시설을 둘러보고 마을 인근에 있는 포도원으로 향하였다. 해발 300~400m에 위치한 포도원은 마치 필자가 보았던 포르투갈의 도루 계곡처럼 급경사의 땅을 개간하여 조성되어 있었다. 이상적인 남향과 철분이 풍부한 트리이아스기의 지층에 편암, 이회토, 점토로 이루어진 토양은 전형적인 피레네의 테루아였다. 이곳에 토착 Axeria품종(카베르네 프랑)을 자연친화적으로 재배하고 수확도 일일이 수작업으로 한다. 와이너리도 현대적인 양조기술을 도입하여 1991년에 나바르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으로 지었다고 한다. 물론 여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페트루스’ 와인을 개발한 전설적인 와인메이커 장 클로드 베루에의 공헌이 컸다.

바스크 출신으로 학창 시절에 아버지인 에티엔 브라나와 각별한 사이였던 베루에는 직접 브라나 와인 개발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투자와 각고의 노력 끝에 겨우 23ha의 작은 규모지만 바스크의 ‘페트루스’라고 할 만한 명품 와인이 탄생하게 된다. 시음 와인 중 전형적인 바스크 스타일의 와인이라고 할 수 있는 ‘Domaine Brana 2008’ 레드의 레이블엔 바스크를 상징하는 붉은 와인색에 바스크 문양이 들어가 있었다. 

바스크 스타일의 명품 와인을 생산하는 브라나 와이너리의 가족. 왼쪽부터 딸 Martine, 어머니 Adrienne, 아들 Jean이다.

토착 카베르네 프랑 60%, 카베르네 소비뇽 10%, 토착 품종인 타낫 30%를 배합하여 지나치게 인위적이고 복잡한 양조기술보다는 이곳의 테루아를 반영하는 정체성, 순수성, 정직성, 확실성을 추구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와인을 만들었다고 한다. 투명한 루비색, 붉은 베리와 스파이시한 향기가 강하게 피어나면서도 적절한 구조감과 균형감이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우아한 풍미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필자에게는 세련미보다는 순수하고 야성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시음이 끝나자 장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고 싶은데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 필자의 의견을 물었다. 필자는 브라나 와인이 가지고 있는 차별성, 즉 가장 바스크적인, 피레네의 자연과 그들의 문화를 반영하는 순수성과 야성성을 강조하는 전략을 추천하였다. 그리고 빠른 시일 안에 그들의 명품 와인을 한국 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인사말을 남겼다.

<글·사진 송점종 우리자산관리 대표·Wine MBA j-j-s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