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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기행]말벡의 고향 카오르의 블랙와인<2014.10.07ㅣ주간경향 1095호>
등록일
2014-10-27 오전 9: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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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유난히 짙은 붉은 색깔의 포도껍질을 가지고 있는 말벡을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만드는 이곳 와인은 와인의 색깔과 깊은 풍미의 강렬한 와인스타일로 인해 일찍이 블랙와인으로 불렸다.

이번 추석 연휴를 이용하여 진정한 말벡의 고향인 카오르, 스위트 와인으로 유명한 쥐랑송, 피레네 산맥 기슭 산티아고 순례길의 출발지인 생 장 피에드 포르가 있는 이룰레기까지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프랑스 남서부의 와이너리를 찾았다. 필자는 먼저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출발해 루아르 밸리의 화이트 와인산지로 유명한 상세르와 푸이퓌메에서 1박을 하고 카오르에 저녁 늦게 도착하였다. 카오르는 파리에서 남쪽으로 575㎞, 툴루즈에서 북쪽으로 115㎞, 보르도에서 동쪽으로 235㎞에 위치한 로트 주의 주도로 중세의 작은 도시이다. 고대 갈로 로마 및 중세의 유적이 많은 역사의 도시로 관광객이 많다.

로트 강변에 있는 중세 카오르 와인산업의 중심이었던 성곽마을 ‘퓌 레베크’ 의 아름다운 모습.

필자는 호텔에 여장을 풀고 카오르의 상징인 황혼에 물든 발랑트레 다리를 산책하였다. 14세기 중세에 세워진 방어용 다리지만 아름다운 아치형 석조구조물로 당대의 토목건축기술이 압축된 예술품이다. 다리 주변에는 여기저기 산티아고 순례길을 표시한 조가비 문양이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카오르는 무엇보다도 중세에 보르도를 통해 수출하던 이 지역의 ‘블랙와인’(Black Wine)으로 더욱 유명하다. 유난히 짙은 붉은 색깔의 포도껍질을 가지고 있는 말벡을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만드는 이곳 와인은 와인의 색깔과 깊은 풍미의 강렬한 와인스타일로 인해 일찍이 블랙와인으로 불렸다. 2000여년 전인 기원전 1세기에 로마인들에 의해 재배되기 시작했던 말벡으로 만든 와인은 중세에 이 지방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대표적인 산업이었다. 이곳에서 말벡은 코(Cot), 오세루아, 심지어 카오르로 불리기도 한다. 그것은 이곳이 진정한 말벡의 고향임을 말해준다.

말벡의 고향 카오르의 상징 ‘발랑트레 다리’의 석양 모습. 중세의 토목건축기술이 압축된 예술품이다.

19세기 후반 병으로 포도원 황폐화
그러나 백년전쟁과 19세기 후반에 유럽 대륙을 휩쓸었던 필록세라(포도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일종의 진딧물)의 피해로 이곳의 모든 포도원과 와인산업은 철저하게 황폐화되어 카오르의 블랙와인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듯하였다. 오늘날 대부분의 와인애호가들은 아르헨티나가 말벡의 고향으로 알고 있지만, 아르헨티나의 말벡은 1852년 프랑스 농학자에 의해 이곳 카오르의 묘목을 옮겨 심은 것이다. 카오르 와인메이커들에게는 참으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블랙와인의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와인메이커들은 폐허가 된 옛 포도농장에 토착품종의 말벡을 다시 심었으나 여전히 필록세라에 쉽게 감염되었다. 그후 필록세라에 강한 미국 포도나무로 대체하였으나 이번에는 품질문제로 이곳 와인산업은 다시 한 번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러한 침체기는 20세기 초까지도 계속되었다.

수령 100년이 넘은 말벡 포도나무. 손이 들어갈 정도로 속이 비어 있다.

그러나 1940년대부터 카오르 와인은 새로운 부활의 역사를 쓰게 된다. 우선 보르도에서 성공적으로 재배된 바 있는 말벡 묘목을 다시 심고, 끊임없는 품질개선을 통해 1971년 ‘카오르 AOC’ 등급을 획득했으며, 아르헨티나의 와인메이커들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하여 전 세계에 말벡 공동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특히 말벡의 메카라 할 수 있는 카오르 구도심에서 패션과 와인, 음식을 접목시킨 현대적인 ‘말벡 라운지’를 운영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다음날 아침 필자는 이러한 카오르 와인의 부활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대표적인 와인메이커인 클로 트리그디나(Clos Triguedina) 와이너리를 찾았다. 카오르 서쪽 근교 로트강이 흐르는 빌뇌브 쉬르 로트에 있는 이 와이너리로 가는 도중 한때 로트강을 통해 보르도로 와인을 수송하였던 카오르 와인산업의 중심지, 중세 성곽마을 퓌 레베크(Puy-l‘Eveque)를 만났다. 강물에 비친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순례자들의 숙소였던 ‘트리그나다’의 역사적인 와이너리 건물. 소박하면서도 평화롭다.

1830년부터 8대째 이어온 와이너리의 오너인 장 뤽 발데스가 일요일인데도 필자를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한때 순례자들의 숙소였던 역사적인 와이너리 건물은 비록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소박하면서도 왠지 마음의 평안을 주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먼저 1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오래된 말벡 포도나무가 있는 포도원으로 향했다. 발데스의 손이 들어갈 정도로 포도나무 속은 비어 있었지만 아직도 건강한 포도송이가 달려 있었다. 필록세라로 황폐화된 이후에 다시 심은 1세대 나무로 언제까지 좋은 포도를 열게 할 수 있을지 자신도 지켜보고 있다고 하였다. 이곳의 포도밭은 주로 석회암으로 구성되어 있는 코스(Causse)라 불리는 고원지대와 코스와 로트강 사이 자갈과 모래, 흙으로 구성되어 있는, 크게 두 개의 테루아로 구분된다. 전자가 강렬한 타닌과 함께 오래 숙성할 수 있는 와인인 데 비해 후자는 보다 과일향이 풍부하고 쉽게 마실 수 있는 스타일의 와인이다.

카오르 블랙와인의 영광을 꿈꾸고 있는 ‘클로 트리그다나’의 오너 발데스. 왼쪽 두 번째가 ‘더 뉴블랙와인’이고 네 번째가 ‘프로브스’다.

말벡 묘목 재배 성공, 부활의 길로
전통적인 양조시설과 함께 이 지역 최초로 새로운 프렌치오크통 숙성실험을 통해 ‘프로부스’(Probus)란 명품와인을 탄생시킨 지하셀러를 둘러보고 본격적인 시음에 들어갔다. 스위트 와인을 포함하여 총 7종류의 와인을 시음하였는데, 지면관계상 2종류의 대표와인만 소개하고자 한다. 100% 말벡으로 만든 카오르의 전통적인 블랙와인인 ‘The New Black Wine’은 양조과정이 특이하다. 손으로 일일이 수확한 포도를 밤새도록 오븐에서 가볍게 열을 가해 건조시킨다. 이 과정에서 포도는 농축되고 블랙와인의 독특한 풍미가 만들어진다. 짙은 블랙레드 컬러에 마른 과일, 캔디의 향과 입안을 맴도는 복합적인 맛이 감동적이었는데 블랙와인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20~30년 이상 숙성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에어버스380 취항식 축하주로 선정된 바 있는 프로부스는 수령 50년 이상 된 나무에서 수확한 100% 말벡으로 만든, 트리그디나 와이너리의 대표 브랜드이다. 프로부스는 로마제국의 황제가 전투가 없는 기간에는 군대로 하여금 직접 포도나무를 심게 하는 등 오늘날 유럽 와인을 있게 한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서는 최초로 뉴 프렌치 오크에 18개월 동안 숙성시킨 혁신적인 와인으로 강건하면서도 균형 잡힌 풍미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이 와인은 현재 남미노선을 운항하는 에어프랑스 일등석에 서빙되고 있다.

카오르의 대표적인 와인메이커 ‘클로트리그다나’ 와이너리의 포토밭 전경.

에어버스380 취항 축하주 프로부스
시음을 마치고 필자는 카오르의 말벡과 아르헨티나 멘도사 말벡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발데스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풍부한 일조량과 높은 온도로 인해 포도가 잘 익어 부드럽고 풍만한 맛을 낸 멘도사의 말벡에 비해, 카오르 와인은 서늘한 기후로 포도가 천천히 익어 지나치게 타닌이 강하고 거친 맛이 난다. 그러나 충분한 에이징을 거치면 은은한 허브, 침엽수, 블랙체리향에 강건하고 복합적인 풍미를 뿜어내는 전형적인 카오르의 블랙와인으로 변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테루아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문이 길어지자 초등학생인 귀여운 막내아들 ‘장’이 나타났다. 9대째 후계자가 나타났다고 농담하였더니 그는 딸들이 양조에 더 관심이 많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현재 카오르의 원조 말벡 와인은 이민에 성공한 아르헨티나 멘도사 와인의 위세를 아직은 꺾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옛 영광을 되찾으려는 그들의 노력이 계속되고 또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이 지상에서 가장 강건한 블랙와인이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영광이 재현되기를 기대하면서 필자는 그가 선물로 준 ‘Probus 2005’산을 필자의 셀러에 좀 더 오랫동안 보관하기로 하였다.

<글·사진 송점종 우리자산관리 대표·Wine MBA j-j-s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