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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기행]베토벤이 영감을 얻은 선술집 ‘호이리게’ <2013 08/13ㅣ주간경향 1038호>
등록일
2014-03-13 오전 9:3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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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호이리게는 올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마치 보졸레 누보처럼 햇와인을 파는 선술집이다.

루스트(Rust)는 스위트와인 루스터 아우스부르크의 와인 생산지로 알려져 있지만 최고 와인 교육기관인 오스트리아 국립 와인아카데미로도 유명하다. 1991년 비영리 교육기관으로 설립된 이래 2만명 이상의 학생을 배출했다. 2년 정규과정부터 단기코스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북부 크렘스에는 분교도 있다. 필자는 고풍스러운 건물들로 이루어진 캠퍼스를 방문하면서 유럽 와인문화의 뿌리와 깊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좀 더 머무르고 싶은 아름다운 시골 루스트를 떠나 다음 일정 때문에 빈으로 향했다.

빈으로 돌아가는 도중 니더외스터라이히 지방의 유명한 레드와인 생산지 카르눈툼(Carnuntum) 지역을 방문하였다. 노이지들러 호수를 뒤로 하고 A4 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다보면, 빈 국제공항이 얼마 남지 않은 곳에 이 지역의 와인 중심지 궤텔스브룬(Gottlesbrunn) 마을이 있다. 비록 이곳은 남쪽 노이지들러 호수와 빈 중간에 위치하지만 빈 북쪽 니더외스터라이히 지방의 테루아에 속한다. 950ha의 비교적 작은 면적이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가장 깊은 맛의 풀 보디 레드와인 생산지로 유명하다.

빈 외곽 비엔나숲 하일리겐슈타트에 있는 와이너리 겸 호이리게 ‘마이너 암 파르플라츠’. 일명 베토벤 하우스로 제9번 교향곡을 작곡한 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 와인의 역사는 셀틱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 이후엔 로마의 전략적 요충지로 발전하였다. 게르만족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AD 79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요새를 구축했고, 다뉴브 강 함대와 로마 황제가 머무르는 궁전을 건설했다. 그런 연유로 로마 유적이 풍부한 카르눈툼은 고대 알바니아어로 바위나 견고한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4세기 콘스탄틴 2세가 세운 개선문 중 20m 높이의 기둥 2개가 남아 있고, 그것은 이 지역의 심볼이 되었다. 이 기둥을 레이블로 사용하여 츠바이겔트 품종으로 만든 루빈 카르눈툼 와인이 유명하다. 석회암, 황토, 점토, 모래와 자갈이 섞여 있는 토양과 파노니안 대륙성 기후, 다뉴브 강과 노이지들러 호수의 영향으로 레드와인 생산에 있어 최적의 테루아를 만들었다.

오디오 시스템 설치한 인상적 와인셀라
필자는 이 지역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스타 와인메이커 마르코비치(Markowitsch) 와이너리를 방문하였다. 궤텔스브룬 마을 중심에 위치한 마르코비치 와이너리를 방문한 첫 번째 인상은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매우 예술적인 곳이라는 것이었다. 1999년 ‘팔스타프 빈터’(Falstaff Vinter) 상을 수상한 이 와이너리는 35ha의 포도원에서 레드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이곳 테루아의 성격을 잘 대변한다고 알려져 있는 츠바이겔트(Zweigelt) 품종으로 현대적이면서도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한 개성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었다. 츠바이겔트 품종은 1992년 클로스터노이부르크 대학에서 프리츠 츠바이겔트(Fritz Zweigelt) 교수가 블라우프랜키쉬와 세인트 로랑(St. Laurent)을 교배하여 개발한 새로운 품종이다.

빈 외곽 하일리겐슈타트에 있는 와이너리 ‘마이어 암 파르플라츠’의 400년 된 지하 와인셀라.


열정이 넘치는 젊은 오너 게르하르트 마르코비치의 안내로 가장 높은 북쪽 언덕에서 남쪽으로 아련하게 뻗어 있는 광활한 포도원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확 트이는 느낌이었다. 나지막한 구릉들이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처럼 펼쳐져 있는 시원한 초원에 거대한 풍력발전 시설의 열주들이 마치 설치미술 작품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포도원 구경을 마치고 와인을 시음하기 위해 와인셀라를 방문했는데 시음장이 특이했다. 셀라 안에 별도 유리로 시음장을 만들어 온도를 차단하고 셀라를 구경하면서 시음할 수 있도록 꾸몄다. 셀라에 오디오 시스템을 설치해 잔잔한 음악을 틀어주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숙성되는 동안 음악이 흐르면 와인이 부드럽게 된다는 오너의 믿음이라고 한다. 동물이나 식물을 키울 때 음악을 들려준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와인 숙성은 처음이었다. 음악이 와인에 미치는 영향은 정확히 확인하지 못했지만 노동자들이나 와인메이커가 음악을 들으며 즐겁게 와인을 만들 수 있다면 분명 더 좋은 명품 와인이 탄생하지 않을까? 마르코비치의 츠바이겔트 2006년 빈티지는 필자가 이번 오스트리아 여행에서 시음한 와인 중 가장 파워풀한 레드와인이었다. 석류 빛을 띤 짙은 루비 색깔, 발사믹과 농축된 허브향, 미묘하고도 복합적인 과일향, 그리고 초콜릿과 오렌지 풍미가 가미된 부드러운 타닌의 감촉이 입안에 오랫동안 맴돌았다.

양조시설이 있던 곳에서 베토벤 요양
카르눈툼에서 빈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수도에 있는 와이너리를 찾았다. 오스트리아 와인생산 지방 4곳 중 가장 작은 700ha의 포도원을 가지고 있지만 와인의 질이나 양보다는 수도 빈이라는 장점 때문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빈 외곽 유명한 비엔나숲에 있는 하일리겐슈타트는 낭만적인 선술집 호이리게(Heuriger)로 유명한 곳이다. 호이리게는 올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마치 보졸레 누보처럼 햇와인을 파는 선술집이다. 다만 자신의 농장에서 생산한 그해의 와인을 자신의 농가에서만 팔아야 한다.

이것은 포도재배 농가가 18세기까지 자신들이 생산한 와인을 마음대로 팔거나 마실 수 없었던 어두운 역사의 유산이다. 농민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당시의 황제 요제프 2세가 허락하여 오늘날 호이리게라는 독특한 관광문화를 꽃피우게 되었다.

츠바이겔트 포도품종으로 강건한 레드와인을 생산하여 새롭게 명성을 날리고 있는 카르눈툼 지방의 포도원 전경.


지금은 값싸고 상큼한 와인과 음식, 전통 음악연주와 함께 손님이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하나의 축제가 되었다. 특히 이곳에서는 햇와인을 마실 때 와인과 미네랄 워터를 반반 섞어서 마신다. 필자는 와인 MBA 동기였던 마이클 터너의 안내로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로 호이리게를 같이 운영하고 있는 마이어 암 파르플라츠(Mayer am Pfarrplatz)를 방문하였다. 4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와이너리는 40ha의 면적에서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1617년에 사용했던 참나무로 만든 양조시설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었다. 이곳은 일명 ‘베토벤 하우스’라고도 하는데, 베토벤이 1802년 4월부터 6월까지 건강이 좋지 않아 이 집에 기거하면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교향곡 제9번 ‘합창’을 작곡하였다고 한다. 

물론 9번 교향곡의 공식 작곡연도는 1824년이지만 1793년부터 이미 작업을 시작했다고 하니 어느 정도 사실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었다. 이곳에는 베토벤의 산책로와 베토벤 하우스가 몇 채 더 있다. 동생들에게 그 유명한 유서를 썼다는 ‘유서의 집’, 영웅 교향곡을 작곡했다는 ‘에로이카 하우스’, ‘전원 교향곡’ 등등. 베토벤이 언제 어디서 그러한 곡들을 작곡했는지의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청각을 잃어가던 절망감 속에서 거닐었던 아름답고 평화로운 비엔나 숲과 호이리게의 낭만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사진|송점종<우리자산관리 대표, Wine MBA> j-j-s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