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터 아우스부르크 와인은 귀부병(Noble rot)에 걸려 농축되고 그러진 포도를 직접 손으로 수확하여 만든, 황금 액에 비유되는 귀한 와인이다.
파일러-아르팅거 와이너리의 포도원 전경. 유명한 루스터 아우스부르크 스위트와인을 생산한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노이지들러 호수의 서쪽에 있는 작은 와인 마을 슈첸(Schuetzen)엔 오스트리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스토랑 타우벤코벨(Taubenkobel)이 있다. 필자는 미슐랭 가이드 별 두 개 등급을 가지고 있는 이곳 식당 겸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2002년 이곳을 방문했을 때 점심만 먹었는데 음식뿐만 아니라 고즈넉한 시골 호텔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였다. 호텔은 이 지방의 전통 가옥을 리모델링하여 마치 우리의 한옥처럼 고유의 주거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더욱 유명한 것은 이 호텔의 레스토랑이다. 독학으로 유럽 최고의 요리사로 성공한 오너셰프 발터 에젤뷕(Walter Eselboeck)은 요리뿐만 아니라 자신의 셀라에 세계의 유명한 와인들을 수집하여 메뉴에 맞는 와인리스트를 작성하고 방문객에게 판매하기도 한다. 유럽 대부분의 유명 레스토랑들은 자신들의 전용 셀라에 수천수만 병의 와인을 수집·저장하고, 와인과 음식이 어울리는 메뉴를 개발한다.
특정 지역 음식에는 같은 지역 와인을 19세기 미국 시인 올리버 홈스는 ‘와인은 음식’(Wine is food)이라고 표현하였고, 현대 와인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루이 파스퇴르는 ‘와인 없는 식사는 태양 없는 낮과 같다’고 하였다. 이는 음식과 와인의 상호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와인처럼 아페리티프(식전주)부터 디저트까지 음식과 함께 하는 술의 종류는 많지 않다. 이러한 특성이 시공과 문화를 초월하여 와인이 오늘날 세계의 술 문화로 정착하게 된 이유일지도 모른다. 현재 음식과 와인의 궁합에 대한 다양한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음식과 와인이 결혼한다고 하여 마리아주(Mariage)라 하고, 영어에서는 매칭(Matching)이나 페어링(Pairing)이라고 표현한다.
고색창연한 파일러-아르팅거 와이너리는 이 지방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음식을 먹을 때 와인은 음료수 역할과 함께 입안의 기름기를 씻어내 청량감을 유지하고, 와인과 요리가 상호작용하여 시너지효과를 가져오게 한다. 프랑스에는 음식과 와인의 궁합에 관련된 ‘육류에는 적포도주, 생선에는 백포도주’(Red wines with red meats, white wines with white meats!)라는 격언이 있다. 여기에 ‘차가운 와인에는 차가운 요리’(Cold wines with cold meats)를 덧붙인다면 음식의 색깔, 재료, 온도라는 세 가지 간단명료한 원칙에 따라 와인을 선택하면 무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즈음은 다양한 요리가 개발되고 새로운 스타일의 와인이 탄생하므로 소믈리에나 요리를 개발한 조리사의 조언이 필요하다. 물론 정답은 언제나 마실 사람의 선택이다. 비즈니스 디너를 위한 와인 선택에 있어 기본은 신토불이(身土不二)의 원칙이다. 특정 지역 음식에는 같은 지역의 와인이 어울린다. 프랑스 루아르 강 하구의 해산물에는 그 곳에서 생산하는 산도가 강하고 상큼한 상세르 와인이 좋다.
다음은 주종관계(主從關係)다. 만약 음식이 주인이라면 요리의 풍미를 능가하는 보르도 스타일의 강한 와인을 주문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좋은 와인을 마시기 위한 모임이라면 와인의 맛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부드러운 요리를 주문해야 한다. 디저트나 푸아그라요리가 아니라면 스위트와인은 배제하여야 한다. 스위트와인은 쉽게 혀에 침투해 고유의 음식 맛을 느끼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테이블와인은 드라이한 와인이어야 한다. 이밖에 갈비 등 일부 육류요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한식요리에는 화이트와인이 잘 어울린다.
미슐랭 가이드 별 두개의 유명한 레스토랑이 있는 타우벤코벨 호텔은 이 지방의 전통 농가를 개조해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오스트리아의 세계적인 작가 아르눌프 라이너의 작품이 걸려 있는 동굴 모양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주문하였다. 어린 사슴고기와 쇠고기를 각각 메인으로 하는 두 종류의 메뉴가 준비되어 있었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마치 와인의 빈티지처럼 요리마다 에젤뷕이 개발한 연도를 표시하였다. 또한 테이블보에 필자의 이니셜을 새겨 특별한 손님임을 강조한 세심함이 돋보였다. 식사 중 메인요리에 서빙된 이 마을에서 생산된 블라우프랜키쉬 2000년산과 디저트와 함께 마신 타우벤코벨 자체 브랜드인 벨쉬리슬링 아이스와인 1999년산과의 궁합은 완벽한 신토불이였다. 다음날 아침 앤디 워홀의 그림이 걸려 있는 테라스에서 역시 코스 요리로 서빙되는 아침을 먹으면서 식당 하나가 이 작은 마을에 그렇게도 많은 관광객을 오게 한다고 생각하니 문화산업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하였다.
와인과 금화 지불하고 자치도시 독립 아침식사를 마치고 노이지들러 호수 서쪽 부르겐란트 지방의 와인 생산지역 노이지들러제-휘겔란트에 있는 역사적인 와인마을 루스트를 찾았다. 이 마을은 호수의 영향으로 다양한 스위트와인을 생산하는데 특히 루스터 아우스부르크 와인이 유명하다. 아우스부르크 와인은 헝가리 토카이와 유사하며 이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스위트와인이다. 이 와인은 1681년 헝가리 황제 레오폴드 1세에게 1만리터의 아우스부르크 와인과 함께 금화 6만길더를 지불하고 루스트가 자치도시(Free city)로 독립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인구가 겨우 1900명에 불과하지만 와인산업으로 부유했던 루스트는 1921년 오스트리아 영토로 편입되었다. 필자는 이 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아우스부르크 와인메이커인 파일러 아르팅거(Feiler-Artinger) 와이너리를 방문하였다.
파일러-아르팅거 와이너리에서 시음한 와인들. 오른쪽 맑은 색깔의 와인들이 이 지방의 유명한 루스터 아우스부르크 스위트와인이다.
고색창연한 와이너리 지붕에서 노이지들러 호수의 보호새인 황새 한 쌍이 필자를 반겼다. 1953년에 이 지역의 전통 와인 아우스부르크를 재현시킨 이 와이너리는 설립자 구스타프 파일러, 한스, 커트 3대에 걸쳐 세계적인 와인메이커로 성장하였다. 대학에서 양조학을 전공하고, 보르도 지방의 전설적인 와인 사토 슈발블랑에서 훈련받은 젊은 와인메이커 커트의 안내로 포도원을 둘러본 후 이 지역이 자랑하는 아우스부르크 와인을 시음하였다.
노이지들러 호수를 향해 마치 고대 그리스의 야외경기장처럼 펼쳐져 있는 28ha의 포도원에서 연간 15만병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루스터 아우스부르크 와인은 귀부병(Noble rot)에 걸려 농축되고 쭈그러진 포도를 직접 손으로 수확하여 만든, 황금 액에 비유되는 귀한 와인이다. 와인 1리터당 잔당이 140~240g으로 스파이시하고 농축된 과일 향과 매혹적인 달콤함, 우아한 산도에 의한 균형감은 어떤 스위트와인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왕관의 보석처럼 아우스부르크 와인은 분명 루스트 마을의 보석이다. 파일러 아르팅거의 와인들은 현재 로버트 파커나 와인 스펙테이터로부터 90점 이상의 높은 점수를 받고 있으며, 최근 런던 국제 와인경연대회에서 ‘올해의 스위트와인 메이커’(Late Harvest Winemaker of the Year)로 선정되었다. 자유를 살 수 있었던 황금의 와인이기에 루스터 아우스부르크의 향기는 더욱 빛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