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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기행]오스트리아 명품 레드와인 블라우프랜키쉬 <2013 07/02ㅣ주간경향 1032호>
등록일
2014-03-13 오전 9:2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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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가족 중심의 소규모 와이너리가 오스트리아 와인산업의 특징인데, 소유주의 와인 철학과 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름다운 슈타이어마르크를 떠나 오스트리아에서 두 번째 큰 와인 생산지역인 부르겐란트(Burgenland) 지방에 늦은 오후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교향시 ‘전주곡’으로 유명한 음악가 프란츠 리스트의 고향이기도 하다. 리스트는 헝가리 음악가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은 그가 태어날 때 헝가리였으나 1차 세계대전 후 오스트리아 영토로 편입되었다. 오는 도중 약속시간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젬머링 산악 철도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알프스의 동쪽 끝자락에 해당되는 이 지역의 정겨운 농촌 풍경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필자는 먼저 미텔부르겐란트의 와인마을, 호리촌에 있는 베닝어(Weninger) 와이너리를 방문하였다. 베닝어 와이너리는 이 지역에서 최고 품질의 블라우프랜키쉬(Blaufrankisch)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베닝어 와이너리의 지하와인셀라, 현대적인 외부건축물과 오랜 전통이 공존한다.


음악가 리스트의 고향인 부르겐란트
와인 애호가들이 와인을 마실 때 어려운 포도 품종 이름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다고들 한다. 필자 역시 오스트리아를 방문하기 전에는 블라우프랜키쉬 와인을 잘 몰랐다. 암펠리데과(넝쿨식물)에 속하는 포도나무는 은행나무처럼 원래 암수가 따로 있었고 그 중 99% 이상 유럽 품종인 비티스 비니페라종만이 오늘날과 같은 와인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러한 원시적인 포도나무는 인간의 육종기술에 의해 재배지의 토양과 기후(테루아)에 적합한 새로운 품종들로 끝없이 개발돼 왔다. 

따라서 현재 모든 양조용 포도품종들은 반드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물론 아직 부모를 찾지 못한 고아 포도나무도 있지만. 대표적인 레드와인 품종 카베르네 소비뇽의 부모가 카베르네 프랑과 소비뇽 블랑이라는 것도 DNA검사를 통해 1996년에야 밝혀졌다. 그래서 영어로 포도품종은 변종(Variety)이라고 표현한다. 현재 전 세계에 양조용 포도나무 변종은 8000여종에 달하며 이 중 실제로 상용화된 품종도 1000여종으로, 전문가도 이를 모두 암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레드와인 품종 블라우프랜키쉬 역시 아직 부모의 뿌리를 찾지는 못했다. 다만, 어원이나 기록을 통해 깨끗하고 섬세한 레드와인 품종으로 수백년 동안 오스트리아에서 재배해 온 토착품종이라는 사실만이 알려져 있다.

현대 건축상을 수상한 ‘베닝어 와이너리’의 시음장 내부. 최대한 자연 채광을 이용하였다.


시골마을 골목길을 따라 베닝어 와이너리에 도착하니 오너인 프란츠 베닝어 부부와 아들 등 가족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 중심의 소규모 와이너리가 오스트리아 와인산업의 특징인데, 소유주의 와인 철학과 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베닝어 와이너리는 30ha의 포도원에서 2006년부터 유기농,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을 통해 자연친화적인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 수세기 동안 와인업계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여 포도를 재배하고, 과학적인 양조방법과 장비의 개발을 통해 양질의 와인을 생산하였다. 또한, 숙성을 위해 병속 와인에 보존제(방부제)를 첨가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그러나 최근 웰빙시대를 맞아 신세계 와이너리를 중심으로 앞 다투어 유기농 와인을 생산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유기농 와인은 화학비료, 살충제나 제초제 등을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포도로 만든 와인을 말한다. 바이오 다이내믹은 유기농보다 더 엄격한 자연친화적 농법으로, 1920년대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이자 농학자인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가 제창하였다. 우주의 주기 변화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농법으로 특히 달의 변화주기에 따라 포도밭을 경작하고, 소뿔을 포도밭에 묻고 각종 허브나 쇠뜨기(뱀밥)를 퇴비에 섞어 뿌린다. 우리나라 농촌에서 사용하는 음력의 24절기와 농경방법이 흡사하다는 것이 흥미롭다. 프란츠 라이하드의 안내로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을 적용한 포도밭을 방문했는데, 새를 이용하여 해충을 잡아먹도록 군데군데 새집을 설치해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블라우프랜키쉬 품종으로 유기농 명품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부르겐란트 지방 ‘베닝어 와이너리’의 뒤라 포도원. 사진속의 새집과 무성한 풀들이 바이오 다이내믹농법임을 보여준다.



유기농보다 엄격한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
1998년에 재건축되어 여러 차례 현대건축 상을 수상한 와이너리 건물 역시 셀라, 병입시설, 시음장, 사무실 등이 개방형으로 설계되었고 자연채광을 최대한 살린 자연 친화적인 현대 건축물이었다. 바이오 다이내믹을 상징하는 현대적인 병 레이블 디자인과 함께 고즈넉한 농촌마을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연출해내는 묘한 아름다움이 필자를 감동케 하였다. 지난 4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을 개발한 이탈리아의 전설적 와인메이커 비욘디 산티가 91세로 타계하였다. 그는 생전에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는 자연의 능력을 믿고 기다리라”고 하였다. 베닝어는 “포도나무가 원래의 자연으로 돌아가 그 자연 속에서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인간의 영향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베닝어 와이너리는 1995년 ‘올해의 와인메이커(Wine maker of the year)’, 2008년에는 미국의 저명한 와인전문지인 로부터 ‘올해의 와이너리(Winery of the year)’로 선정되었다.

베닝어 와이너리에서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에 사용하고 있는 퇴비. 분쇄한 허브, 소뿔, 쇠뜨기 등을 섞어 뿌려준다.


와인 시음을 곁들인 저녁을 초대받았는데, 보르도의 사토나 이탈리아의 카스텔로에서처럼 화려한 디너는 아니었지만 부인이 직접 요리한 헝가리 전통음식이었다. 특히 직원들과 온가족이 함께한 저녁은 시골집 잔치처럼 즐거웠다. 수령 40~80년생 포도로 만든 ‘뒤라우 블라우프랜키쉬 2006’ 와인을 메인요리와 함께 마셨는데 세상의 어떤 와인과도 비교할 수 없는 블라우프랜키쉬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스타일이었다. 뒤라우 포도밭은 석회질이 적은 대신 철분 함유량이 높고 점토질의 비옥한 토양이 두껍게 퇴적되어 뿌리가 깊게 뻗을 수 있어 풍부한 수분과 무기질을 흡수할 수 있다. 또한 위도가 높은데도 패노니안 대륙성 기후의 영향으로 여름은 덥고 겨울은 온화하여 블라우프랜키쉬 재배에 최적의 테루아이다.

블라우프랜키쉬 와인은 짙은 루비 빛을 띤 석류 색깔에 농축된 블랙베리, 살아 있는 체리, 연기, 흙, 나무, 후추 등 복합적인 향기와 우아한 타닌과 적절한 산도가 균형을 이룬 풀 보디 와인이지만 전체적으로 버건디와 보르도와인의 중간 스타일이라고 생각되었다. 도나우 강변의 와인, 그뤼너 벨트리너가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이트 와인이라면, 머지않아 이곳 부르겐란트의 블라우프랜키쉬도 세계의 와인 애호가들을 감동시킬 또 다른 오스트리아의 명품 레드와인이 될 것이 분명하다.

글·사진|송점종<우리자산관리 대표, Wine MBA> j-j-s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