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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기행]700년 전통의 프레스코발디 <2012 12/25ㅣ주간경향 1006호>
등록일
2014-02-25 오전 9: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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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현재 프레스코발디는 704년 동안 30세대에 걸쳐 이탈리아 와인산업의 산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갈색의 대지 토스카나의 몬탈치노로 향했다. 가는 길목에 토스카나의 또 다른 와인 명산지 몬테풀치아노에 들렀다. 몬테풀치아노 와인은 토스카나의 키안티 와인과 여러 가지 유사한 점이 많다. 산지오베제를 기본으로 각기 다른 토착 품종을 배합하여 만든 가볍고 마시기 편한 와인들이다.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Vino Nobile di Montepulciano)는 산지오베제(현지명 Prugnolo Gentile) 70%에 카나이올로 네로(Canaiolo Nero) 20%, 기타 트레비아노(Trebbiano) 등 화이트와인 품종과 배합, 2년 동안 오크통과 병 숙성을 통해 생산한 최고급(DOCG급) 와인이다.

카스텔 지오콘도 지하 와인셀라에서 숙성되고 있는 루체와인.


피렌체 지역의 막강한 귀족가문
이탈리아 동쪽 아드리아나해에 접해 있는 다브루초주에서 생산되는 몬테풀치아노 다브루초(Montepulciano d‘Abruzzo)와 구별된다. 몬테풀치아노 다브루초는 몬테풀치아노 품종에 산지오베제를 배합하여 만든 가볍고 마시기 좋은 와인이다. 이 경우 몬테풀치아노는 지명이 아닌 포도 품종을 말한다. 몬테풀치아노는 기원전 에트루리안이 살았던 중세 마을로 그들의 와인만큼 단아한 풍경을 지녔다. 영화 <트와일라이트> 시리즈의 ‘뉴문’을 촬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점심을 마치고 몬테풀치아노에서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따라 토스카나의 자연을 만끽하면서 몬탈치노로 향했다. 피에몬테 지방의 바롤로와 함께 이탈리아 와인을 대표하는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의 고향이다. 몬탈치노에서 남서쪽 18㎞ 지점을 지나면 오른쪽에 역사적인 프레스코발디의 카스텔 지오콘도가 있다. 정문에서 비포장도로 위에 흰 먼지를 일으키며 2.5㎞를 더 달려 와인셀라에 도착했다. 뜨거운 오후 날씨에도 불구하고 홍보담당 나딘 부차케라 여사가 반갑게 맞았다.

총 300만평 이상의 포도원 소유
프레스코발디(Marchesi de’ Frescobaldi) 와이너리의 소유자인 프레스코발디 가문은 12세기 중세부터 피렌체의 정치·사회·금융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귀족이다. 그들은 피렌체뿐만 아니라 일종의 벤처캐피털을 통해 영국 에드워드 1세의 재정과 관세징수를 담당하고, 영국의 양모를 독점 수출하는 등 일찍부터 다국적 기업으로서 많은 부를 축적했다. 이러한 배경에 힘입어 1308년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해 영국과 유럽의 왕실에 공급하고, 심지어 미켈란젤로를 포함하여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의 그림과 와인을 물물교환하기도 하였다.

현재 프레스코발디는 704년 동안 30세대에 걸쳐 이탈리아 와인산업의 산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1855년에 처음으로 이 지역에 국제적인 품종인 샤르도네, 카베르네 쇼비뇽과 멜롯을 도입하였으며, 가문의 금융력을 바탕으로 토스카나에 현대적인 양조기술과 시설을 갖춤으로써 세계적인 와인메이커로 성장했다. 특히 1995년 첨단기술과 자본을 가진 미국의 로버트 몬다비와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프레스코발디의 비토리아 프레스코발디가 세계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합작법인을 설립하여, 전설적인 루체(Luce)와인을 생산했다. 2005년에는 형제들 간의 불화로 해체된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의 지분과 수퍼토스칸 와인의 대명사인 오르넬라이아(Tenuta dell’ Ornellaia)를 인수하여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와이너리로 부상했다.

카스텔 지오콘도의 고색창연한 정문을 통해 본 리페 알 콘벤토 포도밭.


프레스코발디는 토스카나 지역에 총 300만평 이상의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으며, 연 900만병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11세기 피렌체 방어를 위해 세워진 요새 카스텔로 디 니본자노를 포함하여 카스텔로 디 포미노, 카스텔 지오콘도 등의 와이너리에서 키안티, 슈퍼토스칸,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등 다양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몬탈치노 남서쪽 마렘마 평원의 언덕에 위치한 카스텔 지오콘도는 18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부루넬로 디 몬탈치노를 생산했다. 해발 180~420m, 230헥타르의 광활한 포도원은 편암, 이회토, 역암, 석회석 모래 등 포도 재배에 좋은 토질로 이루어졌다. 리페 알 콘벤토 포도밭은 이 곳 포도원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있다. 서늘한 기후와 편암질의 토양으로 산지오베제 그로소 최적의 재배지이다. 이 곳의 포도로 최고급 와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리제르바(일반 와인보다 더 장기숙성)를 생산한다. 조생종인 멜롯은 기후가 다소 높은 저지대인 라마오네(Lamaione)에서 재배하는데 구조감이 강한 레드와인을 생산한다.

예술성과 과학을 접목한 와인셀라
시음하기 전에 먼저 와인셀라를 방문하였다. 아랍풍의 아치형 지하 셀라가 이탈리아의 예술성을 나타냈다면, 셀라 지붕에 물을 담수하여 뜨거운 한낮 온도를 낮추는 지혜는 실용과학을 보여주었다. 특히 숙성되고 있는 루체 와인의 로고가 태양처럼 빛났다. 셀라 구경을 마치고 시음을 하기 위해 12세기에 건설된 카스텔 지오콘도에 도착했다. 이탈리아에서 카스텔은 영어의 캐슬(Castle)이지만 프랑스의 사토처럼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는 와이너리(양조장)를 의미하기도 한다. 시음장에는 카스텔 지오콘도(부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 상표명)를 포함한 다섯 종류의 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목조 부속건물을 개조한 시음장은 구석구석에 중세의 향기가 배어 있었다. 창문을 통해 펼쳐진 광활한 포도원, 나딘 여사와 도우미 한 사람이 전부인 고성의 적막함 속에서 필자는 잠시 중세의 시간 속에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아름다운 목조건물 시음장과 시음 및 안내를 담당한 나딘 부차케라 여사.


산지오베제 그로소 100%로 만든 카스텔 지오콘도(DOCG급)는 이미 그 명성이 와인 애호가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만, 필자에게는 토스카나의 태양을 상징하는 2009년산 루체(빛) 와인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루체의 이름은 로버트 몬다비 부부가 이 곳 성에 머무를 때 아침에 떠오른 찬란한 토스카나의 태양에서 영감을 얻어 지었다고 한다. 산지오베제 45%와 멜롯 55%를 배합하여 만든 루체는 깊고 진한 루비 색깔에 허브·블랙베리·체리 향과 스파이시한 향을 지니고 있다.

부드러운 타닌, 활기찬 산도와 짜임새 있는 구조감, 잘 익은 과일 맛의 풍미가 오랫동안 입안에서 감돌았다. 부드럽고 유연한 멜롯과 강한 구조감에도 우아한 맛이 있는 산지오베제의 결합은 신세계와 구세계 와인의 완벽한 화학적 결합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비전, 기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에 대한 사랑을 결합하여 개성 있는 세계 최고의 와인을 만들겠다는 비토리아 프레스코발디 명예회장과 고인이 된 로버트 몬다비의 꿈은 루체 와인을 통해 이뤄졌다.

글·사진|송점종 <우리자산관리 대표, Wine MBA> j-j-song@hanmail.net